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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zanne Scholte – The Battl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

Reilly: 오늘 밤 다방면적으로 많은 경력을 가지고 있는 “수잔 숄티” 여사의 훌륭한 연사를 듣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양당의 청중이 듣고 있는 관계로 모든 면을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그녀는 과거 내가 사는 지역의 국회의원 후보였으며 그녀가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나는 정말 기뻤을 겁니다. 여하튼, 그녀는 오늘 북한이라는 어려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이 주제는 그녀가 18년동안 일해오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자유와 인권, 존엄성에 관한 것입니다. “수잔 숄티” 여사는 1996년에 최초로 북한 탈북자들을 미국에 초대하였으며 중국정부의 잔혹한 송환 정책을 끝내도록 압박을 가하기 위해 국제적인 노력을 이끌고 있습니다. 현재, 그녀는 “디펜스포럼재단”의 회장직, 북한자유연합의 회장직, 한국인권위원회의 부회장직과 북한자유방송의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2008년에는 서울평화상, 2010년에는 월터저드 자유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에는 서울 명예시민상을 수여 받았습니다. “수잔 숄티”여사를 소개합니다.

오늘 밤 저를 초대해 주시데 대해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올해는 제가1996년부터 이 일을 시작한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많지만 3가지 문제에만 집중하여 얘기하려고 합니다. 우선, 나는 왜 북한이 세계에서 최악의 인권유린국가인지에 대해 주장하고 싶습니다. 무엇이 그곳을 세계의 비극의 지역으로 만들었는지, 최근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어떤 변화들이 발생하고 있고 북한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민들이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되어 있는 개인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비극적이고 아이러니 것은 북한 사람들이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에 의해 전쟁 동안 나치독일과 제국주의 일본이 저질렀던 잔혹한 행위와 다를 바 없이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는 것있니다. 예를 들면, 북한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산다던가, 가고 싶은 학교를 갈수 있는 권리들이 없으며 심지어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없다. 그들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 또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자유도 없습니다. 사실 외국 라디오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당사자나 온 가족이 수용소에 보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권에 대한 그 어떤 불만이나 불평 또한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3대까지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제가 1990년대에 처음으로 초대했던 탈북자는 강철환씨입니다. 강철환씨는 할아버지가 김씨정권에 대한 불평을 한 이유로 그의 가족과 함께 8살 되던 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이 수용소는 나치 수용소의 11배, 구 소련 수용소의 4배이상 더 오래 지속되었으며, 또한 중국의 “라오가이” 시스템보다 더 오래 존재해오고 있다. 오늘날 북한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어린 아이들이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지고, 그곳에서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는 국가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에는 정치범 수용소가 존재했으며 북한도 김일성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됨과 동시에 정치범 수용소가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수용소에서 죽었으며 오늘날 수많은 남자, 여자, 어린아이들이 이런 집단 수용소들에서 고통 받고 있다.

북한은 또한 근대 역사상 유일하게 전쟁이 없는 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3백만명이 기근으로 인해 아사했습니다. 산업국가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일은 근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은 먹을 것을 무력으로 대신하려는 김씨정권에 의해 초래 된 것입니다. 내가 만나본 탈북자 이민복씨는 농업전문가로서 나라를 돌아다니며 농업생산량을 조사하였다고 한다. 그는 북한 당국이 토지를 국유화에서 사유화로 수정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당시 처한 기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보고서를 낸 후 그는 큰 보상을 받게 될 거라고 믿었지만 오히려 친구로부터 그 보고서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게 될 처지에 놓였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의 극심한 기근 때문에 굶어 죽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인도주의적인 도움을 주는 동안에도 김씨정권은 의도적으로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죽였다.

이 기근은 김씨정권에 악용되어 사람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방아쇠가 되었으며 그 결과는 바로 김일성에 의해 만들어진 출신성분제도이다. 이 출신성분제도는 사람들의 충성도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을 순위를 매기는 제도인데 어디에 살지,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얼마만큼의 풍요로운 생활을 하게 될지, 어떤 학교에 다니고, 어떤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사실 그 제도의 최고위층의 사람들은 엘리트들이라고 알려져 있고 그 엘리트들은 정권에 가장 충성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진다. 그런 엘리트들은 수도인 평양에 살 수 있으며 북한정권의 모든 권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북한의 몇몇 특정 지역은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는 지역으로 여겨져 정권에 의해 방치되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렇게 식량원조를 컨트롤 당하는 북한 주민들은 또 다른 공포에 처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난민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기아로 인해 북한 사람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중국국경을 넘었다. 이 기근의 초기에는 사람들이 중국에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북한에서의 상황이 나쁘지만 중국에 가면 더 나빠 질것이며 안 좋은 처우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정치선전을 했다. 하지만 배고픔에 굶주리던 사람들은 앉아서 굶어 죽느니 중국에서 기회를 얻고자 위험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 출신 탈북자 김지은씨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북한에서 엘리트 계층이었으나 가족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탈북을 결심하여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중국에 넘어간 그녀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농가의 문밖에는 쌀과 고기들이 놓여져 있었고 그것들은 강아지들의 먹이였던 것이다.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고 “중국의 개가 북한의 의사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산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렇게 1990년대 기아를 면하기 위해 국경을 넘었던 첫 난민들을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 없는 전기가 있었고 중국인들은 자동차와 부유를 누리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먹을 것이 넘쳐났다. 이러한 사실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져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건너왔고 중국은 이러한 난민들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중국은 국제조약의무를 준수하기는커녕 굶주린 북한의 남자, 여자 아이들을 경제적 난민으로 결정하고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온 그들을 무시하였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한국의 헌법에 따라 북한 주민들도 한국의 시민이 되며 그에 따라 유일하게도 재정착을 위한 장소를 가질 수 있는 난민들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정책 때문에 그들은 체포되어 북송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북한의 난민들이 ISIS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북아프리카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있는 난민들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며 어떻게 하면 이러한 난민들을 지켜줄 것인지, 그들이 안전할 수 있는 곳은 과연 어디일지 의문을 가져본다. 이 난민들이 북한에 돌려보내져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보내진다는 것을 잘 알면서 중국이 북한의 난민들을 체포하고 북송하는 것은 유엔 난민 조약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북한 주민들을 당국의 허가 없이는 이동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범죄 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되어 처벌을 받아 감옥에 가거나 죽음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 기관에 의해서 북송된 후 더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중국은 한 자녀 정책 때문에 여자 인구수가 적은 편이다. 중국은 여자가 부족하여 이런 상황이 악용되어 먹고 살기 위해 중국에 온 북한 여자들이 인신매매로 팔려가는 범죄로 이어졌다. 대다수의 탈북하는 북한 여성들이 이러한 매우 취약한 상황의 결과가 80%가 넘는 북한 여성들이 브로커들에 의해 중국 남자의 아내들로 팔려가거나 매춘을 강요당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상에서 포르노물에 이용당하고 있다. 나는 북한과 중국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이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지역이라고 보고 있으며 중국은 북한 공작원들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게 허락하면서 유엔 고등 판무관 등 종교적 접촉은 막고 있다. 나는 용감한 북한여성들이 미국 국회에서 이러한 실태를 증언하도록 도운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중 많은 여성들은 여러번 잔인한 인신매매로 팔렸으며 국경지역에서 북한 여성들이 사고 팔리는 일들이 오늘도 진행형이며 어제날보다 오늘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누구도 이러한 실태를 까밝히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이런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취재하던 미국 여성 기자인 로라 링과 유나 리씨는 북한에 인질로 잡히게 되었으며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에 의해서 북한에서 구출되었었다.

국경지역은 북한 난민들을 돕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최근에 한국의 집사 김원호씨가 북한에 납치된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지난 3월에 사라졌으며 4월에는 조선족 목사 한충렬씨가 북한에 의해 살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두분 모두 북한 난민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많은 이들이 미국의 평범했던 젊은 대학생 대비드 스네이든이 2004년에 북한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믿고 있다. 믿을 만한 최근 소식에 따르면 그를 평양에 봤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그 어떤 나라나 정부가 북한처럼 자국민이나 외국인을 납치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인신매매의 위험한 상황에 처한 자국민을 보호하고 지켜줄 대신에 그들을 더욱 더 궁지로 몰아넣고 중국과 한편이 되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국가 또한 본적이 없다.

나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몇 슬라이드를 보여주겠다. 모두들 알아보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Malala이다.  학교에 다닐 권리를 주장하던 이 소녀는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파키스탄에 있는 텔레반에 의해 총을 맞았었다. 그녀는 이제 국제적인 영웅이 되었고 2014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해서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사진은 얼마 전에 세계에서 조회수 1위를 기록한 감동적인 사진이다. 국제 사회는 시리아를 벗어나려던 어린 소년이 가족과 함께 죽은 모습을 보며 시리아 피난민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비극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국제사회가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였다.

확신하건대 이 슬라이드에 나와있는 소녀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어린 소녀의 이름은 노예지이고 Malala와 같은 나이인 14살에 탈북을 했다.  시리아의 3살된 소년과 그의 가족처럼 이 소녀도 단순히 살기 위해 탈북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같은 시기에 탈북한 9명의 소녀들 중 가장 어린 나이였고 굶주림 때문에 중국으로 탈북했다. 다른 탈북 여성들처럼 중국의 어느 시골 농부에게 노동 노예로 팔려갔었다고 한다. 그녀는 탈출을 시도했으나 다른 브로커들에게 잡혀 또 다시 팔려갔다고 한다. 그녀는 나는 고작 14살에 불과하지만 나의 삶은 참 고통스러웠다고 말한다. 다행히, 그녀는 중국에서 구출되어 한국인과 그의 부인 덕분에 보호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보호아래 그녀와 다른 고아들도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고 라오스를 통해 한국으로 가려고 했지만 한국으로 입국하기 하루 전 라오스 정부에서 중국 정부와 협력하여 9명의 청소년들을 다시 북한 당국에 의해서 강제 북송 당하였습니다. 한국에서의 자유를 꿈꾸며 북한을 탈출하려던 소녀는 한국도착 바로 하루 직전에 3정부가 음모하여 다시 지옥과 같은 북한으로 보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Malala와 시리아 난민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나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어려움에 알고 무엇이든 하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20년간 이 일을 해온 사람으로서 아는 현실이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2014년 2월 마침내 북한인권법을 통과하였으며 그 규모와 폭력의 상태는 전세계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심각한 상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조사위원회는 김씨정권이 말할 수 없이 잔혹한 반인류적인 범죄를 감행하고 있다고 결론지었으며 그들이 범행한 범죄의 규모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에게 했던 잔혹한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결국 것을 알게 되었다. 국제사회에 의해서 이러한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위한 맹세했으며 주시하며 대기하고 있지만 그러나 지금 북한 사람들에게 이런 잔혹한 일들이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십년 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인권 문제가 아니라 핵 위협만을 강조해 왔다. 이것은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실수가 아닐 수 없다. 20년간 북한 인권을 위해 활동한 결과 마침내 북한 인권이슈가 선두로 나오게 되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실수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거라는 것은 우리 정부의 잘못된 믿음이었다. 그것은 불가능 한 것이다. 1997년에 탈북한 최고위 탈북자 황장엽씨는 이미 우리에게 여러 차례 경고 했었다. 그는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원과 양보를 이용하기만 하고 절대 핵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신들은 북한의 인권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인권은 북한에게 아킬레스건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그는 거듭 여러 차례 슬픈 진실들을 증언했었다. 하지만 두번째 비극은 핵 문제에만 배타적으로 정책 초점을 맞춘 클린턴행정부와 부쉬행정부가 북한의 핵개발 정당성을 오히려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 인민들이 인권 문제로 고통당하고 있는데 우리의 적인 북한정부를 먹여 살렸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제국주의 양키늑대들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핵개발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쌓았다.

미국인으로서 위험과 곤경에 처한,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인권보다 더 신경 쓰는 것은 없다. 탈북하는 사람들 만큼 미국인들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 북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미국인들을 증오하도록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탈북자들이 미국에 대해서 알고 나며는 이해한다. 제가 아주 큰 예를 들겠습니다. 매해 탈북자들과 후원 단체들이 함께 하는 자유북한 주간이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행사는 북한 사람들의 자유와 인권, 존엄의 증진을 위해 늘 미국의 수도 워싱톤시 한국 전쟁 기념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것을 상상해 보십시요: 옛 북한 병사들이, 한국 자유를 위해서 싸우다 전사한 미국 군인들 묘지에 그들은 남북한 전쟁기간 전사한 사람들을 위해 화환을 놓고 북한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남한의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기리며 자유북한 주간을 시작한다.

이제 나는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 모든 비극들이 거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김정은정권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정권과는 다르다. 북한에는 그사이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전례 없는 정보폭탄과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그 결과이다. 정부는 권력을 유지하기 시민들을 세뇌시켰다.  어릴 때부터 그들이 천국과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믿게 하였다. 남한은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못살고 양키 늑대들의 식민지라고 가르쳐 증오심을 불러일으켰다. 북한 사람들은 불법적으로 흘러들고 있는 정보와 물건을 통해 남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남한의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서양의 영화를 감상하며 북한 정권에서 가르친 것이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탈북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타이타닉을 보았으며 영화를 본 후 혼란스러워 했다고 말한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영화는 한 남자가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는 내용이다.

이 개념은- 다른이들의 삶에 가치를 준다는 이 사실은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 혁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타이타닉”은 독재자에게 영원히 충성을 하며 노예처럼 살던 북한 주민들에게 혁명이었다. 희생정신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독재자들에게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다른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 영화를 본 북한 주민들은 외국인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인간미를 보았던 것이다. 북한정부는 사랑에 대한 이 영화를 자본주의의 큰 실패로 묘사하여 선전하였다.  그 이유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1912년 4월 15일이 김일성주석의 생일과 같은 날이었던 것이다.  2015년인 오늘날에는 북한 인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탈북자들로 인해 매드맥스:퓨리러드가 북한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60%가 넘는 북한인들이 외부 정보를 접한다고 한다.  나는 북한이 비록 외부세계와 차단되어 있지만 외부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은 80%가 넘는다고 보고 있다. 가장 훌륭한 민족이며 지상낙원에서 산다고 주민들을 설득해오던 50년이상 지속된 북한정권의 선전은 더 이상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정권이 컨트롤 제어를 잃기 시작한 것은 출신 성분에 따라 실행해오던 음식과 재료, 상품 등을 분배하던 분배시스템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예를 들자면 엘리트들에게 쌀을 나누어줄 때 그 외에게는 옥수수를 나누어주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전체 주민들이 완전히 정권에만 의존하여 생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 시스템은 무너졌고 대규모 기아가 발생하였다. 북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시장을 개발했으며 시장시스템은 전국적으로 발전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기아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정권은 전국으로 확장되는 시장시스템을 막기 위하여 2009년 12월에 화폐개혁을 실행한 것은 개인 소유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함 이였다. 그러나 화폐개혁은 실패로 끝났으며 중산층들의 압도적인 불만을 야기하였다. 현재 북한정권은 하는 수 없이 시장스시템을 방치 하고 있으며 엘리트들은 시장경제를 통해 이익을 보고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정권을 믿거나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말에 의하면, 과거에 엘리트로 신분상승 할 수 있는 노동당원이 되는 것을 모두가 간절히 원하였지만 지금은 돈을 벌고 가족을 돌보는 것을 더 중시한다고 한다. 그들의 인생의 목표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한가지 또 중요한 사실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목격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탈북을 돕는 사람들이며 북한정권의 실체와 현실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탈북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북한에 남아있는 나머지 가족들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현재 탈북자 수는 3만명 가까이 이르고 있으며 그들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하고 있는데 중국에 있는 브로커들이 이들의 연락을 돕고있다. 대단한 것은 이들이 북한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통해 북한의 정보는 그곳의 진실을 알리고 있으며 북한 사람들 또한 그들을 통해 외부정보를 얻고 있으며 이렇게 외부의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더 이상 정부에 의존하여 생존하지 않을 것이다는 것이다. 20년동안 북한인권 활동을 해오지만 북한 사람들이 북한인권문제가 세계적으로 이슈화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변화하고 있는 밝은 북한을 위해 우리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첫째로 그것은 그들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선 국제 사회가 압력을 가하여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들을 강제북송하는 중국이 이 끔찍한 북송 정책을 포기하도록 하여야 한다. 김정은, 시진핑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시기보다 더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 정부도 중국을 압박하여 한다. 나는 우리가 인권문제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난민들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우리는 이 난민들이 중국에서 겪는 고통을 폭로하여야 할뿐 아니라 중국정부가 북한정권을 지원함으로써 반인류 범죄로 인해서 탈북자들이 배로 더 겪어야 하는 고통에 대한 사연들을 공적으로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 또한 중국이 이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여야 한다.

지난 금요일 우리는 북한난민의 날을 조직했다. 9월 24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이 행사는 중국이 국제난민조약에 가입한 날로서 강제북송을 하는 것이 이 조약을 어기는 것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 함께 일을 하도록 장려하여야 한다. 중국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들의 이런 생각을 지지하며 중국의 관리들뿐 아니라 작가 등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미래에 중국의 협력국가는 북한이 아닌 한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실례를 들자면 2014년 중국의 장관 왕씨가  환구시보에 중국이 아무리 북한이 저지른 만행을 묵인하려 해도 “북한의 붕괴는 시간문제이다.”라고 썼다. 중국공산당 중앙학교의 편집장은 중국이 평양을 포기하고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한국과 협력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편집장 직을 잃은 최근에도 중국이 얼마나 많은 돈을 북한에 준대도 북한은 붕괴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중국의 지식인들과 군대 그리고 중국의 관리들이 생각하는 바이며 우리 모두가 아는 진실인 것이다. 중국 정부의 리더들이 깨달은 것은 미래에는 한국과 협력해야 할것이며 중국이 이제는 북한정권의 범죄 행위들을 지원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지금 한국의 미사일 방어시스템 도입에 아주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사드 시스템은 뉴스의 화제거리지만 한국은 김정은 의 위협 때문에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개발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북한 난민 구하기 날 행사 때 우리는 시진핑에게 탈북자 송환을 멈추고 한국과 협력하여 평화통일에 동조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청원서를 전세계24개도시에서 전달했습니다. 우리는 긴장 조성의 원인을 김 정은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오직 한가지 방법, 중국도 원하는 것 이고 지역의 평화를 위해서는 중국이 한국과 손잡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며 김정은 에 대한 지원을 끝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국의 북한정권 지지에 대해 지적했는데, 전에도 말했지만 반인륜적 범죄에 공모하는 것이 김정은 이 장기 집권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초점을 맞춰야 할 두번째 중요한 문제는 인권문제들을 다시 문제 삼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1999년에 열린 정치범 수용서에 관한 1차 청문회에서 제가 탈북자들을 초청하여 증언하게 했는데 그때 미국의 소리 라디오 방송 기자가 청문회를 듣고 정치범 수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미국 국무부에서 그 이야기를 언론에 싣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기자는 매우 화가 나서 그 이야기를 팩스로 보냈습니다. 이 일로 그는 직업을 잃을 뻔 했습니다. 미국 국무부가 정치범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가 언론에 나가는 것을 막은 이유는 두가지라고 그들은 언급했습니다:

증언자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뢰성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4자회담에서 북한과 핵문제를 협상하려고 하는데 인권문제가 상정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우리는 몇 십년간 인권 비극은 외면하면서 4자회담도 했고, 북한과 핵동결 협상도 했고, 햇볕정책도 했고, 유화 정책도 펼쳤으며 6자회담도 가졌습니다. 이런 허송세월을 보내는 기간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고려해야 하는 세번째는 다시는 이 정권에다 후원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제공한 인도적인 지원이 제대로 소비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식량지원을 지지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소비되도록 감시해야 한다고 믿고있습니다. 우리는 고아들이 먹는 것을 직접 보아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지원한 식량이 소비되는 것을 보지 않는다면 북한 당국은 그것을 다른 데로 빼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존경을 받는 “기아를 반대하는 국경 없는 의사들의 행동모임”과 같은 정치적 목적이 없는 인권단체들도 북한 당국이 지원물자를 빼돌린 것을 알고는 항의를 하며 북한을 떠났습니다. 북한에 대규모 아사사태가 일어났을 때 김정일은 수백만 달러를 핵개발과 사치스러운 개인생활에 계속 소비했습니다. 오늘날 김정은 은 무모하고 잔인한 폭압정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김정은 이 수십억 달러를 핵무기 개발에 소비하며 한국을 위협하고 지역의 불안정을 조성할 때 북한정권의 엘리트들이 아닌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만성적인 기아와 영양실조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사일 한발의 가격은 약 850만 달러입니다. 이는 북한 주민 1900만명의 1년 식량입니다.

네번째로, 제가 가장 열정적으로 하고있는 것인데, 우리는 탈북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해주고 지지해줘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탈출한 탈북자들이 들려주는 진실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이번 자유북한주간 행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북한에 부모, 형제, 친척을 남겨둔 탈북자들이 선언문을 작성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들이 북한에 남아있고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어렵게 살며 일하는지 알기에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북한에 민주주의사회를 건설하고 통일된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 동아시아에서부터 전세계에 평화를 확산시키는 모델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 말은 탈북자들의 말입니다. 그것은 확실히 우리가 원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들과 협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연합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북한 내부에 국경을 통해 정보를 유입 시키며 풍선을 보내는 단체들을 포함하여 탈북자 비영리단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들 중에는 제가 앞서 언급했던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줬던 강철환씨가 이끄는 단체가 있습니다. 그도 역시 제가 초대했던 최초의 탈북자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1999년 증언했습니다.

그와 그의 단체, 북한전략센터는 다른 탈북자 박상학, 이민복처럼 북한에 USB와 메모리칩을 들여보내고 있습니다. 이민복씨는 농업 전문가입니다. 그들은 풍선에 넣은 전단지를 통해 정보를 보내고 있는데 단파 라디오기기와 심지어는 돈도 보냅니다. 1년전 박상학씨와 저는 세계인권선언문 발췌록을 포함한 전단지를 수백, 수천장을 보냈으며 북한 주민 당신들도 이 인권에 해당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한 군인들에게 보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단체는 매우 중요하고 저희와 같이 협력하는 단체인데 북한 인민 해방 전선이라고 하며 전직 북한 군인들로 조직되었습니다. 이들이 한국전쟁기념관 헌화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북한 인민 해방 전선이 아마도 북한에 정보를 보내고 또 정보를 가져오는데 가장 성공한 단체일 것이며 북한에서 빼돌린 정보를 한국정부와 미국 정부에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아마 저의가 알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정권을 반대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던 시기는 구소련에서 유학하고 북한으로 돌아간 군부 지도자들이었으며 그들은 구소련 개방시기에 구소련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았으며 북한에서도 같은 개혁이 일어나기를 바랬다. 그들은 실지 1989년부터 1994년 처형되기전까지 비밀리에 활동하였다.

우리가 지원하는 한 단체의 예를 들고 싶습니다. 우리가 비용을 제공하고 탈북자가 진행하는 자유북한방송의 단파방송은 조사의 의하면 북한에서 제일 인기있는 프로라고 합니다. 또한 북한 정권이 가장 과하게 방해하는 것이 이 방송이 효과적이라는 증거입니다. 자유북한방송의 김성민 대표 역시 김정은 정권의 정기적인 암살목표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 이 방송이 효과적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제가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지난해8월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이 묻어 놓은 지뢰에 여러 명의 한국군인이 부상당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도발에 대응하여 한국정부는 비무장지대에 대북 확성기를 켰습니다. 이 확성기들은 햇볕정책 시기에 잠자던 것들입니다. 3일간 한국정부는 케이 팝을 틀었으면 한국 대중 음악은 아주 인기가 많습니다. 한국은 3일간 케이 팝과 보통의 뉴스 소식을 방송했지만 4일째 되는 날 우리 프로를 방송했습니다. 우리의 허락도 없이 말입니다. 그들은 4일째 되는 날 우리 프로를 대북 확성기에서 방송하였습니다. 그러자 북한 당국은 즉시 협상 복귀를 요청했습니다. 협상기간 북한 당국은 늘 요구하던 평화협정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늘 요구하던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요구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9월 협상기간동안 요구한 것은 단 하나 대북 확성기 중단 이였습니다. 이 일은 제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북 확성기에서 자유북한방송 프로를 방송했기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북한을 탈출하여 비무장지대 군인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탈북자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여러 미국 국회의원들이 가진 북한에 대한 희망과 꿈을 담은 특별 메시지도 방송했습니다. 미국 국회의원들이 보낸 메시지에 대한 반응은 환상적이었으며 실제의 북한 주민 2명의 반응을 인용하겠습니다.

한 사람은, 그는 방송국에 정보 제공하는 사람이기에 그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북한 정권은 항상 미국은 우리의 적이라고 말했는데 많은 주민들은 미국이 가장 발전되고 민주주의적인 나라인지 알고 있다. 나는 미국의 정치인들이 탈북자들이 북한주민에게 보내는 이 방송에 참여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는 미국의 지도자들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시간을 내서 탈북자 방송에 참여한 것에 대해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다른 시민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절대 김정은 정권이 붕괴되야 평화롭게 살수 있다고 감히 말을 못합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이런 말을 해주니 매우 행복합니다. “ 우리는 최근에 한 프로를 시작했는데요, 미국의 대한 북한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미국으로 오세요 라는 프로이고 미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과 미국을 방문하는 탈북자들이 미국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것인데 저는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고 이제 막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떤 반응들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이 방송은 개인 시민들과 교회의 지원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미국 시민들과 교회들이 전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매달 지원하고 있으며 탈북자들의 여행경비와 매일 진행되는 방송 비용을 후원해주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탈북자들 스스로 모든 프로램과 라디오 방송 후원하며 운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이 방송을 위해 월급의 10분의1일 지원하고 있으며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사실 오랫동안 방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좌절하는 것은 많은 자원들이 정부와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소들이 말만 하는데 소비되는데, 북한인권 비극에 대해 말만 하고 그것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원이 지원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직면한 큰 도전입니다. 또 하나 초점을 맞춰야 할 중요한 것은 내부 반대 세력입니다. 저는 군인들에게 접근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습니다. 사실을 말하면 북한에는 내부 반대 세력이 없다는 것이 특이한 점입니다.

이것은 북한 정권이 얼마나 억압적인 정권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에게 마지막 요새는 내부 반대 세력입니다. 지금 북한의 엘리트들은 김정은 정권을 반대하여 얻을 수 있는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김정은 의 성공에 그들의 일생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최근에 탈북 한 고위급 탈북자를 몇일전에 만났는데 그는 그가 탈북 한 이유는 김정은 이 악마라는 것을 깨닫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런던의 북한 외교관이 탈북 한 것도 보셨을 것입니다. 같은 이유입니다. 북한 엘리트들이 정권을 반대하여 돌아섰습니다. 그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런던의 외교관은 런던에 있었기에 탈출이 쉬었습니다. 또 다른 신사분은 매우 고위직이었기에 탈출이 가능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오늘의 평양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들과 접촉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김정은 정권이 망하면 그들에게 도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탈북자 단체들 중에는 엘리트들로 구성되고 형성된 여러 단체가 있으며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또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김정은 정권교체의 대안과 그들이 이 미래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미국이 통과된 대북제재법을 실행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몇 년을 낭비했는데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올해 초 이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사람들은 저에게 찾아와 “ 수잔, 잘 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마침내 대북제재법이 통과되었군요!” 그래서 저는 아니 아직 김정은 에게 갚을 빚이 많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올해 초 김정은 의 미사일 도발에 국회에서는 “하느님 맙소사, 뭔가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압박수단을 적용했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수단입니다: 김정은 이 정권을 유지하는데 사용하는 통치 자금줄을 막는 제재를 시행하는 것이다.

김정은 은 엘리트들의 등급에 따라 그들에게 보상을 합니다. 그것이 체재를 유지하는 수단이며 그래서 자금줄을 차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제가 한국정부가 생각해야 하는 특별히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정부에 한가지 호소하고 싶은 것은 반인륜적범죄를 저질렀거나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한 사람들, 인도주의 지원물자를 빼돌린 사람들이 법적 절차를 거쳐 책임을 지도록 명단을 작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년전 북한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834건의 탈북 사례를 있는데 조사해본 결과 834건의 인권침해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 주장은 한국 정부가 정말로 범죄 가해자들의 명단을 작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2009년 이것을 제안했던 이유는 자유 북한방송에서 일하는 한 여성을 만났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고매화입니다. 그녀는 14살된 딸과 함께 탈북을 했습니다. 그 둘은 중국에서 갈라졌는데 고씨의 딸은 북한으로 송환되었습니다. 고씨가 딸을 찾았을 때는 그 딸은 북한국경경비대 군인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잔인한 상황을 막을 수 있을까? 살아보겠다고 하는 14살짜리 소녀를 어떻게 때려 죽일 수 있을까? 먹을 것을 찾으려는 것이 그렇게 큰 죄일까? 어떻게 경비대 군인들은 어린 아이를 잔인하게 학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제가 한국 정부에 절박하게 호소하는 것은 반인륜적범죄자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그들에게 법적 책임을 지게 함으로서 그들이 그것을 알고 이런 잔학행위를 멈추도록 압력을 가하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몇 장의 사진을 더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북한에서 몇년전에 저를 비난하려고 만든 것인데, 저는 처음에 그것을 보고 대단히 놀랐지만 바로 다음 아니, 이것은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징조라는 것을 깨닫게 되였다. 저것은 아마 저일 것입니다. 이것은 자유북한주간 입니다. 우리는 매해 미국 워싱턴 DC에서 자유북한주간 행사를 진행해왔는데 지난해는 서울로 옮겨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우리가 서울에서 행사를 했을 때 이것이 북한 정부가 내놓은 반응입니다. 그들은 웹사이트에 이 선전물을 올렸습니다. 이것은 자유북한주간 행사이고 여기 내 주머니를 좀 봐주세요. 저는 이것이 흥미롭게 여겨졌습니다. 우선 저기에는 방송을 상징하는 마이크가 있고 저는 북한이 무엇을 두려워하는 가를 알았습니다: 바로 정보 유입입니다. 저에게는 마이크가 그들이 두려워하는 정보 유입이라고 생각됩니다. 전단지들도 있습니다. 내 주머니에 있는 다른 것들은 전단지인데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소통입니다. 또한 빨간 점이 보이는데, 일본은 실제로 미국 다음으로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한국은 마침내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는데 12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일본인 납치자문제로 북한인권을 위한 매우 강력한 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많은 시민들이 북한에 의해 납치당했으며 일본과 한국의 민주주의동맹과 인권단체들이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한이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동맹들을 갈라놓고 싶어 합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일본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주머니안에는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있었다.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였다. 북한은 명백하게 이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김정은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기독교라는 것을 알고 있다. 기독교는 북한정권이 한국, 미국, 일본 심지어 자본주의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다. 왜 일가요? 왜냐면 북한은 기독교 신앙의 완전한 대립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김일성이 어린시절 일제식민지에서 자라면서 기독교 신앙의 힘을 보았다고 믿는다. 그는 기독교인으로 자랐다. 왜냐하면 누가 떨쳐 나서 일본과 맞서 싸웠을 가요? 누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서명을 했을 가요? 기독교인들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25%, 30%가 기독교인 이였을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를 반대하고 조선의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사람의 절반이 기독교인 이였고 조선의 문화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도 기독교인였다는 것을 김일성은 보았으리라고 믿는다. 일제식민지를 반대하여 일어서서 싸웠던 사람들도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래서 김일성은 기독교 신앙의 교리를 이용하여 정권을 세웠다. 그는 자신을 신으로, 그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주제사상은 성경으로 둔갑시켰다. 북한 주민들은 그들의 교리와 밤의 기도가 있다. “어버이 김일성 수령님 고맙습니다.” 가 그들의 밤의 기도이다. 그들의 모든 교리는 독재정권을 위해서 있다. 그들은 수천개의 주제사상센터에서 가르치는 독재를 공부하고 있다. 이것이 왜 북한정권이 기독교를 두려워하는 것인지고 저는 십자가가 거기에 있어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다른 사진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김옥금씨와 제 막내 아들입니다. 제가 그녀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해드리고 싶은데 그녀는 우리가 북한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였고 저는 그녀를 몇 년전에 워싱턴 DC와 유엔에 초청하였습니다. 저의 막내 아들은 지금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이 사진은 오래전의 것입니다만 저의 아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이 바로 그녀입니다.

옥금씨의 가족은 굶어 죽어가고 있었고 그녀와 같은 많은 북한 엄마들이 중국에 가서 식량을 구하러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잡혔고 북한으로 송환되었습니다.  그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했다는 죄로 고문을 당하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정치범수용소 바깥쪽의 농장의 노예로 차출돼서 풀이나 벌레 등을 접촉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제 기억엔 그녀가 유엔에 증언하러 가기 위해 DC부터 뉴욕까지 탄 암트랙 기차에서 이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녀가 메뚜기가 단백질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것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생생하게 표현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녀는 그녀의 10살짜리 아들과 다시 만나기 위해 이 끔찍한 정치범수용소 시련속에서 살아남기로 결심했다.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난 그녀가 집에 왔을 때는 그녀의 아들은 굶어 죽었고 남편은 그녀가 정치범수용소에 있는 동안 이혼했다. 북한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던 그녀는 다시 중국으로 갔고

중국에서 잡혀 중국 구치소에 끌려갔습니다. 구치소에 있으면서 자신과 같이 북한에 울고있는 딸을 남겨두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왔지만 중국 공안에 잡힌 한 북한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그 북한여성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정확히 알았으며 그 여성의 구치소 탈출을 도왔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처참하게 매를 맞고 거의 반죽음이 되였다. 모든 탈북자들이 이런 마음의 아픔과 끔찍한 고통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김씨 부인의 이야기는 인류에 대해 매우 강렬한 것을 느끼게 해준다. 비록 그녀가 북한 독재정권의 노예로 자랐지만 그녀에게는 고통을 겪는 사람에 대한 강한 동정심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존엄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모든 인간은 가치와 존엄을 가지고 있다는 예수님의 말을 인용하지만 그녀는 독재 정권의 노예로 자랐고 자신의 가치를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녀는 많은 마음의 고통을 받고있으며 고통을 받으면서 그녀의 일생을 다른 사람을 구하는데 바치려고 합니다. 왜냐면 그녀가 기독교인이기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다른 여성에 대한 동정심이 그녀를 일어서서 투쟁하게 하였다. 제가 언급했듯이 그녀는 이런 영웅적이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행위로 인해 뭇매를 당했지만 다시 탈출하여서 자유의 땅 한국에 옴으로서 지옥 같은 북한에 승리하였다. 이제 그녀는 다른 탈북자를 돕고있으며 기독교인이 돼서 그녀의 교회의 지도자가 되였다.

저에게 김씨 부인은 인류의 불굴의 정신을 나타낸다. 그녀는 저에게 모든 북한 사람이 곧 자유롭게 살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마지막 사진은 지난주 금요일에 열린 북한주민 구하기 날의 행사 사진이다. 제가 24개도시의 운동가들이 중국대사관과 영사관에 갔었다고 말했었다. 이것은 시진핑에게 첫번째로 청원서를 전달한 도시: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이다. 잘 어울리죠. 이 분은 나의 친한 벗이고 동료인 아타봉웅 갈로우스이고 그가 이날 중국대사관에 청원서를 전달했다. 중국대사관에서는 그를 내쫓으려고 하였지만 그는 북한 주민들을 대신하여 시진핑에게 전달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맞섰다. 저는 아타에 대해 알고있으며 줄여서 아타라고 부르겠다. 아타의 부모님은 아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정책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인종차별정책은 없어졌다. 아타와 제가 아는것은 북한 사람들도 김씨 정권이 인권유린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인권유린은 반드시 멈춰야 하고 여러분 모두가 이 투쟁에 동참해주기 바라며 저를 초대해 주신대 대해 감사하고 질문이 있으면 해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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